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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 생존자 절반 이상 80대 넘어 ‘희망고문’ [신통일한국으로 가는 길]

입력 : 2020-02-08 10:00:00 수정 : 2020-02-07 21: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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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서울은 지금 / ⑤ 사라져가는 이산가족… 기약없는 상봉 / 작년 이산가족 13만여명… 5만여명 생존 / 2005년 10만 붕괴… 2016년 사망 더 많아져 / 접촉 남북관계에 좌우… 악화 땐 기약없어 / 2005년∼2007년 실시 화상상봉 중단 상태 / 지금까지 생사확인 5만9563명… 절반 미달 / 전면 생사확인 추진·교류 다양화 급선무 / 北 개별관광·이산가족 고향방문 연계 필요 / “남북 정치문제 민간차원 해소 계기될 수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남북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하는 말이다. 분단 후 70년 넘게 지나면서 혈육과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뜨는 이산가족 1세대가 늘고 있지만 이들의 상봉 기회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어서다. 한 번에 남북 가족 100명씩 만나는 현행 방식으로는 ‘희망고문’밖에 되지 않아 교류 방식과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산가족 고령화에도 상봉 진행은 더뎌

7일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공동 운영하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등록 이산가족은 13만3370명이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8만640명으로, 생존자 5만2730명을 훌쩍 뛰어넘은 상황이다. 2004년까지만 해도 생존자는 10만명이 넘었지만 이듬해 10만명 아래로 떨어진 뒤 2016년부터 생존자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졌다.

생존자의 절반 이상은 80세 이상 고령자다. 80대가 40.5%로 가장 많고, 이어 90세 이상이 22.7%, 70대 22.2%, 60대 8.2%, 59세 이하 6.4% 등 순이다.

이산가족 2세대인 장만순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은 “분단 당시 10대가 지금의 80대가 됐다”며 “그분들이 가족을 보고 싶고 고향에 가보고 싶은 건 엄청난 꿈인데 꿈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특히 신청자의 연령을 감안할 때 상봉할 수 있는 가족이 부모와 형제자매에서 점차 자녀 세대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조카나 삼촌 등 얼굴도 잘 모르는 친인척과의 상봉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럼에도 이산가족 상봉 진행은 더디기만 하다. 그동안 이산가족이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남북관계에 좌우됐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상봉 등의 행사가 많이 진행됐지만, 악화되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교환 행사를 통해 처음 이뤄졌다. 남측 35가족, 북측 30가족이 각각 평양과 서울을 방문했다.

이후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6·15공동선언에 합의한 이후 본격적으로 대면 상봉이 이뤄지며 2007년까지 매년 1∼3차례씩 진행됐다.

하지만 2008년부터 현재까지는 진행되지 않은 해가 더 많았다. 특히 2011∼2013년, 2016∼2017년은 장기간 이산가족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다. 모두 남북관계가 경색된 시기다.

이산가족들 사이에서는 현재 이산가족 상봉 방식으로는 매년 1회씩 한다고 해도 다 만나려면 500년이 걸린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상봉 규모가 대부분 1회당 남북 각 100명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방식으로 지난해말까지 모두 4355가족, 2만761명이 상봉했다. 2005년에는 화상상봉센터가 문을 열어 2007년까지 557가족, 3748명이 화상상봉을 했지만 이후 화상상봉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생사 확인이라도 먼저 해야

이산가족 문제를 풀기 위해 현재 일부만 이뤄진 생사 확인을 전체 이산가족으로 확대하고 교류 방식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전면적인 생사 확인은 이산가족이 초고령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 가족이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이후 직접이든 간접이든 상봉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2016년 이산가족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문제 해결을 위해 시급하게 추진돼야 할 정책으로 응답자의 압도적인 다수(76.3%)가 ‘전면적인 생사 확인 추진’을 꼽았다. 응답자는 이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10.3%), ‘남북 간 서신교환제도 마련’(4.0%), ‘정부 차원의 전화통화제도 도입 및 활성화’(2.9%), ‘추석 등 정기적인 고향방문 추진’(2.6%) 등을 선택했다.

하지만 실제로 당국 차원에서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경우는 2019년 말 현재 8262가족, 5만9563명으로 전체 이산가족의 절반에 못 미친다.

이산가족들은 다양한 방식의 교류에도 참여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설문조사에서 교류 및 준비사업에 대한 개인별 참여 희망을 파악한 결과 상봉, 서신교환, 고향방문에 대한 참여 의사가 높았으며, 이산가족 유전자 검사와 영상편지 제작에 대한 관심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이산가족 교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직접상봉 규모도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7년 ‘이산가족 상봉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상봉 신청자의 평균 기대여명으로 미뤄볼 때 이들이 생애 한 번이라도 가족과 만나려면 최소 상봉인원을 매년 73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추산했다. 상봉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통상적인 상봉을 정례화하고, 80세 이상의 평균기대수명을 초과한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한 특별상봉, 혼인·사망·생일 등 가정 대소사와 명절에 따른 수시상봉 등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정부 역시 고령이 된 이산가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북한 가족과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남북 이산가족 교류 촉진 기본계획과 정책에 반영되도록 노력한다는 방침이지만 북한 측의 호응이 없어 좀처럼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관광지에 개인적으로 방문하는 개별관광을 이산가족의 고향방문과 연계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정부는 올 들어 북한 개별관광 사업 추진을 공식화했으며 세부안 가운데 하나로 이산가족과 비영리 사회단체 중심으로 금강산 등을 방문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다만 미국의 협조와 북한의 호응을 얻는 것과 관광객의 신변안전을 보장하는 문제가 남는다.

장 위원장은 “이산가족 대부분은 북한의 고향 땅 근처라도 밟아보는 게 소원”이라며 “남북의 정치적인 문제를 민간 차원에서 해소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

◆獨·中은 어떻게 했나... 동·서독 모두 이산가족 편지·전화 허용

 

과거 분단 독일과 중국은 이산가족 교류를 일시적인 이벤트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허용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모색했다.

 

7일 국회 입법조사처의 ‘남북 이산가족 관련 지원 정책의 실태 및 개선과제’ 보고서 등에 따르면 과거 동독과 서독은 이산가족 문제를 정치와 분리해 연속성 있는 정책을 펼쳤다.

 

동독은 1961년 베를린장벽 설치 후 서독인이 출입금지 구역을 무단으로 출입하면 법정 최고형을 적용하는 엄격한 ‘여권법’을 실시했다.

 

하지만 동·서독 정부 모두 이산가족들이 편지나 전화 연락을 하는 것은 허용했다. 베를린 지역에 한해 이산가족 구성원의 상봉도 가능했다.

 

경제력 등에서 우위에 있는 서독이 동독 주민에게 환영현금과 여행경비, 의료비 등의 장려금 지원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자율적으로 자매결연 사업과 이산가족들과의 인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일정 역할을 하며 주민들이 서로 이해를 높이고 이산가족들이 상호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었다.

동·서독이 서로를 적대하던 1963년 동독인 카르타 스테펜서가 서독으로 영구 이주하는 것을 허가한 증명서이다. 분단의 와중에도 교류, 협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동·서독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그 결과 서독인의 3분의 1 정도, 동독인의 3분의 2 정도가 헤어진 가족과 상호 접촉한 것으로 평가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동시에 중화민국을 선택한 대륙인이 대만으로 건너가 양안 간 이산가족이 발생한 중국도 정치 문제와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분리해 교류를 지속할 수 있었다.

 

1978년 덩사오핑(鄧小平)이 통우(서신 교환)·통상·통항 등을 대만에 제안하고 3년 뒤 이산가족 재회를 제의하면서 대만 주민들이 중국을 쉽게 방문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마련했다. 1988년부터 친척방문·병문안·조문 등의 명목으로 중국 본토인의 대만 방문이 허용됐고, 비슷한 시기 대만도 계엄법을 폐지하면서 이산가족 상봉은 급격히 늘어났다.

 

이승현 국회입법조사관은 “동·서독이나 양안(중·대만) 모두 정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도 인도주의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입장을 견지했으며, 민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며 “이산가족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원 정책과 동시에 남북한 당국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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